4 맛있는 식탁의 비밀

꾀순이의 손님 초대

1982년 3월 말에 뉴욕에서 남편을 만났다. 1980년부터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는 셋째 언니 약혼식에 참석하려고 뉴욕에 갔다가 생각지 않게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잘못 들으면 오해의 여지가 있으나 그날 소개팅은 진지한 자리도 아니었고, 남편이 나의 데이트 상대도 아니었다. 인연은 그렇게 맺어지는 건지, 아무튼 그때 만나서 거의 40년을 잘살고 있다. 우리는 시댁에 얹혀살았는데 무뚝뚝한 아들 형제만 데리고 사시던 시어른들은 갑자기 재재거리는 며느리를 보며 무척 좋아하셨다.

이민 오신 지 10년 동안 가게에서 일하시느라 집에 사람을 초대하지 못하셨다는 어머님은 새 며느리가 들어왔다고 값비싼 본차이나 세트부터 사시고 주변 분들을 초대하셨다. 그때 차리셨던 손님상을 생각하면 왜 어머님이 그렇게 오랫동안 손님 초대를 못 하셨는지 짐작된다. 어머님은 사흘 동안 매일 장을 봐 오셨고, 상다리가 안 부러진 게 다행이다 싶게 음식을 차리셨다. 불고기와 갈비, 생선구이와 생선찜, 이렇게 겹치는 메뉴도 많이 하셨다. 손님이 가시면 늘상 “맛이 없어서 다 남았다” 하셨는데 사실은 음식을 너무 많이 하신 탓이었다. 손님들이 가시면 밥 한 솥은 그대로 남고, 미처 내놓지 못한 요리가 오븐에 남아있기도 했다. 자연히 식구들은 남은 음식으로 1주일 동안 먹어야 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음식을 빠듯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편이 늘 불안해할 정도다.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나는 음식보다 누구와 같이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주 손님을 초대하는 나는 쉽고 부담 가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장보기는 될 수 있으면 손님 치르기 바로 전날에 한다. 그래야 음식 준비하는 데 신경 쓰는 시간이 준다. 하다가 힘들면 메뉴 하나쯤 빼기도 한다. 그래도 배고파서 가시는 손님은 없게 정성껏 준비하지만, 일단 너무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겁 없이 아무 때나 손님을 치를 수 있다. 

집 안 청소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시가에서 분가해 제일 먼저 초대한 친구가 내 중학교 동창 화림이다. 그때 어떤 음식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잊히지 않는 게 있다. 남편에게 내가 음식 할 동안 집을 좀 치워달라고 부탁했다가 곧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성격이 꼼꼼한 남편이 엉뚱하게 자기가 총각 때부터 쓰던 책상 정리를 시작한 것이다. 서랍 속까지 뒤집어 정리했는데 결국 친구가 점심 먹으러 나타났을 때까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실화다.

가끔 청소하기 싫어서 사람을 못 부르겠다는 사람을 본다. 손님을 초대할 땐 거의 대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물론 청소의 신(?)이신 우리 남편 같은 사람과 사는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청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집안이 좀 깨끗하지 않아도 누가 욕할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호의로 손님을 초대했는데 집안이 정갈하지 않다고 흉본다면 잘못은 불평하는 손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두고 불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남편은 “집이 정돈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청소 걱정으로 좋은 사람을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갖는 걸 포기하기보다는, 모이고 만나는 데 우선을 두는 게 아닐까?

내가 처음부터 손님상 차리는 데 능숙했던 건 아니다. 처음엔 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손님 치르는 날 내 눈앞에서 얼쩡거리던 남편과 아이들이 내 신경질을 받기 일쑤였다. 특히 음식 준비하느라 정신없는데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하면 좋은 소리 듣기 어려웠다. 음식 하다 갑자기 재료가 모자라면 남편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 오라고 시키기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자주 손님을 치르다 깨달은 게 있다. 일단 손님은 초대받은 자체가 고마워서 음식이 좀 맛없어도 만족해하니 굳이 죄 없는 식구들이 희생양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음식솜씨를 자랑하려고 부른 게 아니니까 맛있으면 좋지만, 혹시 망쳐도 그중 하나쯤은 괜찮을 거라고 속 편히 생각하면 여유가 생긴다. 

요즘에 와서는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음식을 손쉽게 하는지 묻는다. 여러 가지 음식을 하면서도 부엌에 늘어놓은 것 없이 깨끗한 걸 보고 신기해한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기도 했지만, 얼마쯤은 내 성격에서 온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힘든 일을 싫어하고 어떻게 해서든 쉬운 길을 찾는 데 촉이 발달한 꾀순이었다. 그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친구가 내가 어떤 힘든 일을 해냈을 때, “네가 한 거 보니 쉬운가 보다. 너 힘든 건 안 하잖아?” 했을까? 요리 완전초보가 겁 없이 손님을 초대하면서 부딪친 장벽도 당연히 힘들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쉬운 방법을 찾아갔다. 

1. 음식마다 실제로 조리에 필요한 시간, 서로 어울리는 음식궁합을 알면 메뉴 짜기도 쉽고 그날 전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음식을 하다 보면 부엌이 난장판이 되는 건 두서가 없어서다. 그래서 조리 순서가 중요하다. 나는 웬만하면 프라이팬 하나, 냄비 하나를 계속 사용하며 요리할 수 있게 순서를 짠다. 그러면 부엌이 깨끗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2. 적은 인원에게 코스요리를 낼 때와 뷔페식으로 차릴 때는 적합한 음식이 다르다. 코스요리로 대접할 때는 음식 때문에 부엌을 떠나지 못하는 안주인을 보며 손님이 미안해하지 않도록 메뉴와 순서를 잘 정해야 한다. 뷔페에서는 오래 두어도 맛을 잘 유지하는 음식을 택한다. 두 경우 모두 전날 해두어도 손색없는 음식 한두 가지를 넣으면 손님 치르는 날이 훨씬 쉬워진다.  

3, 손님을 초대했는데 몸이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든 음식을 다 집에서 만들 필요도 없다. 피치 못해 100% 주문해온 음식이라도 예쁜 그릇에 담고 식탁보, 냅킨, 꽃 등으로 정성껏 차리면 훌륭한 식탁이 된다. 음식보다는 누군가에게 대접하려 했던 자신의 마음을 믿자.

미국 사람 집에 초대받아 가보면 음식이 그리 과하지 않다. 심지어 조금 배고파 돌아올 때도 있다. 결국 음식을 먹자는 게 아니라 모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내 경우는 많은 사람을 먹이다 보니 예산을 줄이려고 식당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하지만, 방법이 어떻든 손님을 초대한다는 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나누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맛있는 한 끼, 브런치 

남편과 나는 하루 중 아침 식사를 제일 좋아한다. 요즘은 주로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 두 끼를 먹게 되면서 아침 식사가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는 아이들이나 손님이 와서 사나흘씩 묵을 때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아침 메뉴를 바꾼다. 

1. 사워도 빵 또는 바게트, 샤크슈카, 딸기 스콘, 각종 베리, 커피 혹은 차

2. 아보카도 토스트, 복숭아 스콘, 각종 베리, 커피 혹은 차 

3. 비건 팬케이크,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 초코칩 스콘, 각종 베리, 커피 혹은 차

만들기

샤크슈카(Shakshuka)는 원래 북아프리카 튀니지 음식인데 이스라엘이나 중동지방에서 많이 먹는다. 재료는 기호에 맞게 넣으면 되는데 나는 주로 빨강피망 혹은 대파와 시금치를 넣는 샤크슈카를 만든다. 무쇠 프라이팬에 만들어 식탁에 올리면 보기도 좋고 먹는 동안 식지 않아서 좋다. 

*피망 샤크슈카 (그림, 크기 소)

재료(4~6명) : 양파 큰 것 2개, 마늘 10쪽, 피망 2개, 토마토 2개, 달걀 6~8개, 소금, 후추, 큐민, 고수, 채수나 닭고기 육수

  1. 채 친 양파와 마늘을 올리브 기름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서 볶는다.
  2. 채 친 피망과 다진 토마토(또는 토마토 소스)를 넣고 채수를 부어 약한 불에서 30분 정도 끓인다. 소금, 후추, 큐민으로 간을 한다. 여기까지는 하루 전이나 아침 일찍 해 놔도 된다. 채수의 양은 30분 끓인 후 자작하게 남을 정도로 넣는다.
  3. 상에 올리기 직전에 우물처럼 달걀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고 돌아가면서 달걀을 깨뜨려 넣는다. 끓기 시작하면 1~2분 후에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여열에서 흰자를 익힌다. 오래 두면 노른자가 너무 익어서 맛이 덜하다. 상에 올리기 전에 고수 다진 것을 뿌린다.  

*아보카도 토스트 (그림, 크기 소)

아보카도 토스트는 만들기 쉽고 영양이 풍부해서 자주 해 먹는다. 나는 잉글리시 머핀을 집에서 굽지만 바쁠 땐 사서 만든다. 토스트에 얹을 수란을 만드는 게 부담되면 달걀 프라이로 대신해도 괜찮다.

재료(4인) : 잉글리시 머핀 2개, 잘 익은 아보카도 2개, 아루굴라 120g, 달걀 4개, 크림치즈, 발사믹 글레이즈 

  1. 잉글리시 머핀 2개를 배를 갈라 4쪽으로 만들어 토스터에 굽는다.
  2. 머핀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그 위에 아루굴라, 납작하게 썬 아보카도, 수란을 얹고 발사믹 글레이즈를 뿌려 모양을 낸다.

*수란 (그림, 크기 소)

  1. 달걀은 작은 종지에 따로따로 깨 놓는다. 

2. 팬에 물을 2cm 높이로 넣고 식초 1큰술과 소금 1작은 술을 넣어 끓인다. 

3. 물이 끓으면 중간 불로 낮추고 달걀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팬에 앉힌다. 뚜껑을 덮고 불을 끈 뒤 5분쯤 후에 건져 낸다. 수란을 미리 만들어놓으려면 얼음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냉장 보관한다. 필요할 때 뜨거운 물에 잠시 넣으면 따뜻한 수란이 된다.   

*딸기 스콘

만드는 과정은 생략하고 그림으로 대신. (그림, 크기 소 4개)

옥스포드 디너클럽 브런치

브런치는 손쉽게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식사 중 하나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손님들 대부분이 배가 고픈 채 나타나니까 음식 맛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힘들면 요리를 거의 안 해도 되는 장점도 있다. 빵집에서 갓 구워낸 신선한 빵, 요구르트와 푸짐한 제철 과일, 맛있는 커피와 향이 좋은 차만 있어도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된다. 거기에 집에서 만드는 따뜻한 음식 한두 가지를 더한다면 금상첨화다. 

처음에 옥스포드 디너 클럽을 만들 때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을 불러서 먹이리라 야심 차게 마음먹었다. 그런데 서로 일정을 맞추기 힘들었고, 펜데믹까지 겹쳐서 요즘은 몇 달에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벼르고 벼르다가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기용이를 위해 겸사겸사 날짜를 맞추어 보았다. 이번에 모인 사람은 큰아들네 식구 넷, 주서와 에밀리, 주헌, 재영, 기용이와 춘희, 카밀라와 폴, 영주, 우리 부부까지 어른 열셋에 아이 둘이다.

메뉴

시금치와 대파 샤크슈카 (그림, 크기 소)

집에서 구운 사워도 빵

베이글과 훈제연어 

딸기 스콘 (그림, 크기 소)

블루베리와 키위 

미모사

내가 모임 전날 9시가 훨씬 넘어 집에 들어온 데다 며칠 전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서 메뉴는 힘들지 않게 최소한으로 짰다. 아침에 바쁠 것 같아서 식탁부터 깨끗하게 치워놓고 다음 날 아침에 구울 딸기 스콘 반죽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었다. 대파는 씻어 놓고, 시금치는 살짝 데쳐 놓았다. 그러고 나니 10시 30분. 알람은 9시에 맞추고 잤다.

오전 9시 : 오븐을 섭씨 230도에 맞춰 켜놓았다. 사워도 빵을 구우려면 1시간쯤 예열해야 한다. 대파는 흰 부분만 채썰고 베이글과 훈제연어에 넣을 양파도 얇게 썬다. 

오전 10시 : 씻고 손님 맞을 차림을 한다. 

오전 10시 20분 : 빵 반죽을 오븐에 넣는다.

오전 10시 30분 : 대파를 버터에 노릇노릇 볶다가 데쳐 놓은 시금치를 썰어서 넣는다. 채수를 자작하게 붓고 낮은 불에서 30분 정도 끓인다. 

오전 11시 : 버터와 크림치즈를 상온에 내놓는다. 베이글과 같이 먹을 훈제연어를 커다란 접시에 예쁘게 담는다. 얇게 썬 양파와 토마토, 케이퍼(caper)를 훈제연어와 어우러지게 담는다. 베이글은 배를 갈라서 다시 두 쪽으로 썬다. 사람이 많을 때는 그래야 낭비가 적다. 

오전 11시 20분 : 사워도 빵을 꺼낸다. 오븐을 섭씨 200도로 낮추고 딸기 스콘을 굽는다.

오전 11시 30분 : 과일을 썰어 담고 상차림을 한다.

오전 11시 50분 : 딸기 스콘을 오븐에서 꺼내 식힌다.

낮 12시 : 손님이 한둘 도착하기 시작할 때 끓여놓은 대파와 시금치 사이에 우물을 만들어 달걀을 돌아가며 깨뜨려 넣는다. 커다란 프라이팬이면 달걀 6~8개 정도 넣을 수 있다. 나는 팬 2개를 사용해 달걀을 15개 넣었다. 치즈를 뿌리고 뚜껑을 덮어서 1~2분 정도 있다가 불을 끄고 내려놓는다. 한눈팔면 노른자가 너무 익는데 그러면 맛이 없다. 약간 덜 익은 듯해도 여열로 더 익으니까 오히려 조금 미리 꺼내는 것이 좋다. 

미모사나 커피는 손님들이 직접 만들어 마시거나, 아니면 자리에 앉았을 때 준비해도 된다. 오랜만에 모이는 거라 이번엔 샴페인과 오렌지주스를 섞은 미모사(mimosa)도 만들었다. 미국에선 브런치에 이런 알콜 음료를 자주 내놓는데 그중에도 보드카와 토마토주스를 섞은 블러디 메리(Bloody Mary)나 미모사가 자주 등장한다. 남편이 자신 있게 고른 수박 맛이 별로라 가운데만 골라 화채를 만들고 나머지를 주스로 갈았다. 색깔이 고와서 오렌지주스 대신 수박을 넣어 미모사를 만드니 그런대로 낭비는 면했다. 

지금은 브런치 정도는 굳이 시간표를 써놓고 하지 않아도 되지만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이 20~30명분의 많은 음식을 할 경우는 세분화해서 자세한 시간표를 짠다. 실제로 시간표대로 하면 거의 그대로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진다. 

아이들이 3시 정도 되니 슬슬 일어난다. 상 치우고 설거지를 끝내니 4시 좀 넘었다. 일고여덟 시간 노동한 결과로는 꽤 보람 있다.

음식은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시댁에 살 때 아침에 가게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시는 시부모님을 위해 자연히 한 번도 안 해본 저녁상을 차려야 했다. 할 줄 아는 음식이 하나도 없던 나는 당시 브루클린에 살던 셋째 언니에게 매일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밥물은 어떻게 맞춰?”

“언니, 콩나물국은 어떻게 끓여?”

그러고도 서울의 사촌 시누이, 효순 언니가 보내준 요리책들을 펴놓고 서툴게 음식을 흉내냈다. 하다 보니 사흘이 멀다 하고 잡채를 만들었는데 웬만해선 망치기 쉽지 않은 요리였기 때문이다. 칼질이 서툰 내가 각종 채소를 작고 예쁘게 써는 동안 한나절이 다 가버렸다. 부엌에 종일 서 있어도 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한번은 갈비탕을 끓였는데 아버님께서 “에구, 웬 소가 그냥 지나갔네” 하시는데 죄송해서 귀가 빨개졌던 것 같다. 남을 늘 배려하시는 어머님께서 “맛만 있구먼, 아무 소리 말고 드세요” 하며 내 편을 들어주셨다. 

이렇게 대책 없던 나도 거의 40년 음식을 하다 보니 조금은 나아졌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없어도 잘 먹는 남편 탓에 솜씨가 크게 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눈썰미는 좀 있는 편이어서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을 집에서 비슷하게나마 만들어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는 할 줄 알게 되었다. 그 예로 2021년 연말 모임을 들 수 있다. 다섯 부부를 초대했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코스요리를 하려니 살짝 걱정도 됐지만 한편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전채는 리코타 치즈 소스에 찍어 먹는 납작 빵과 세비체(Ceviche). 만들기도 간단하고 미리 해놓을 수 있어서 택했다. 주요리는 양념 닭과 연어장. 닭 요리는 미리 만들었다가 오븐에 살짝 데우면 되고, 연어장도 소스를 미리 만들기에 금방 내놓을 수 있다. 디저트는 손님이 사 온 초콜릿 케이크. 새 음식을 내놓을 때 잠시 말고는 내가 부엌에 서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안주인이 부엌에서 동동거리지 않아야 손님들이 편히 즐길 수 있고 나도 다음 초대를 겁내지 않게 된다.   

사람이 많건 적건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와 같이 먹는가이다. 반가운 사람들이 만나면 음식은 뒷전이 되기도 한다. 맛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맛이 덜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디저트 한 가지만 가지고도, 커피만 맛있어도 한 끼 잘 먹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만일 음식 불평을 하는 손님이 있다면 그건 그의 탓이지 초대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메뉴

새우 세비체

리코타 치즈와 납작 빵

양념 닭과 연어장

케이크와 차

만들기

*새우 세비체 (그림, 크기 소)

세비체(Ceviche)는 페루 사람들의 전채요리다. 보통 싱싱한 생새우나 날생선으로 만드는데, 이것들을 레몬이나 라임 같은 과일주스에 절이면 산(acid) 성분에 익는다. 만일 생새우를 사용하는 게 걱정되면 끓는 물에 아주 살짝 익히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산성 과일로 익히는 게 좀 더 맛있다.

재료 : 새우 500g, 라임 3개 또는 레몬 2개, 토마토 1개. 자색양파 1/2개, 오이 1개, 아보카도 1개, 고수, 청양고추 1~2개, 소금, 후추.

1. 새우를 꼬리를 떼고 4~5등분으로 자른 후 라임 주스에 30분 정도 절인다.

2. 토마토, 양파, 고수, 청양고추를 비슷한 크기로 깍둑썰기해 새우에 넣고 냉장고에서 30분 더 절인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신맛이 강하면 설탕이나 매실액을 살짝 넣어도 좋다.

3. 마지막으로 깍둑썰기한 오이와 아보카도를 넣어 잘 섞는다.

고수, 오이, 고추와 아보카도는 기호에 따라 많이 넣어도 상관없다. 크기를 모두 비슷하게 자르면 간 맞추기도 쉽고 보기에도 예쁘다. 세비체는 시간이 지나면 맛이 변하고 아보카도가 잘 뭉개지므로 손님 오기 한두 시간 전에 먹을 만큼만 만드는 게 좋다. 옥수수 칩(tortilla)을 곁들여 내놓는다.

*연어장 (그림, 크기 소)

재료 : 연어, 양파, 무순, 말린 가다랑어, 간장, 정종, 설탕, 식초 

1. 연어는 소금에 30분 정도 절였다가 얼음물에 몇 번 씻어낸다. 물기를 빼고 종이 타올로 싸 두었다가 손님 맞기 30분쯤 전에 얇게 썰어 냉장고에 둔다. 

2.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초밥 양념으로 간을 한다.

3. 양파는 가늘게 썰어 찬물에 담가 매운맛을 뺀다. 무순도 씻어 놓는다.

4. 양념장 만들기 : 간장과 정종을 3:1로 섞은 것에 설탕을 조금 넣고 끓인다. 말린 가다랑어(가쓰오부시)를 넣고 1분 후에 불을 끈다. 식혀서 체에 거른다.

5. 그릇에 밥을 담고 위어 연어, 양파, 무순을 예쁘게 올리고 양념장을 살짝 뿌려준다. 남은 양념장과 고추냉이(와사비)를 곁들여 낸다. 

손자 돌상 차리기

작은 손자 호원이의 첫돌을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 손님이 어른 서른에 아이들 열, 마흔 명이다. 돌상을 쉽게 차릴 방법은 있다. 한국식당과 반찬가게에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나는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내 음식솜씨가 좋아서는 아니다. 어느 집이나 똑같은 잔치 음식을 내놓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다. 메뉴는 이틀 전에 짜고 하루 전날 장을 봤다. 우리 며느리는 내가 음식을 해주는 게 고마워 모든 걸 맡기는 스타일이다. 나도 병원에서 일하느라 힘든 며느리가 돌날 아침에 아이들 챙겨서 나타나 주는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을 초대할 땐 가짓수를 늘리지만, 양을 늘려서 해결할 수도 있다. 가짓수가 많아 시간이 모자라면 막판에 한두 가지 줄인다. 꼭 필요한 재료가 아니면 혹시 잊어버리고 못 샀어도 빼고 만들면 된다. 그래도 초대받은 사람은 거의 차이를 모르니까 요리하는 데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 나는 다음 네 가지를 염두에 두고 돌상 준비를 했다.

1. 메뉴를 짤 때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한다. 마침 집에 잘 익은 아보카도가 좀 있어서 과카몰레를 만들기로 했다. 

2. 누가 오는지 고려한다. 아들 며느리의 외국 친구들과 이민 2세 조카들을 위해 김치볶음밥을 넣었다. 외국인에게는 한국 음식을, 한국 사람에게는 외국 음식을 내면 실패하지 않는다. 

3. 전날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준비해 둔다.

4. 돌날 아침 스케줄(11시 사진 촬영, 12시 점심)을 보아 2~3시간 정도면 음식을 마무리할 수 있게 계획을 세운다. 

메뉴

모듬 치즈

과카몰레와 옥수수 칩 

갈비찜

닭튀김

매운 새우와 새우전

채소쟁반국수

오징어무침

김밥과 만두

김치볶음밥

캘리포니아 롤

갈비찜은 동서에게 부탁하고 몇 가지는 미리 해두어서 돌날 아침엔 순조롭게 상을 차려냈다. 다섯 살 미만 아이들 열 명이 뛰놀다 간 집은 아수라장이다. 오늘도 부부청소단(우리는 그렇게 부른다)은 소매 걷어 올리고 한두 시간 만에 집 안을 손님 오기 전보다 더 정갈하게 치웠다. 둥굴레 차 한 잔 타서 앉으니 역시 잘 치렀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은 남은 음식으로 대충 때우고 어제 못다 잔 잠을 잘 수 있겠다.

작은 정성으로 큰 감동을 (그림, 크기 소)

오랜만에 영주를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영주는 동생 친구라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는데 대학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어느 날 독립기념일 주말을 바닷가 집에서 보내자니까 굉장히 좋아했다. 그 모습이 전화선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다. 영주는 바다에 나가 동네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보고 하룻밤 자고 갔다.

영주도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그날 초대가 고마웠다며 계속 점심을 사겠다고 별렀는데 팬데믹까지 겹쳐 미루고 미룬 끝에 거의 3년 만에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때 우리 집에 왔던 게 굉장히 좋았다기에 “내가 뭐 해줬었니?” 하고 물었다.

“새싹비빔밥.”

새싹비빔밥,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은, 이름만 근사한 짝퉁(?) 비빔밥이다. 현미밥에 밭에서 딴 아루굴라, 미나리, 상추 새싹들과 달걀 프라이를 얹고 초고추장 양념과 함께 내면 끝이다. 5분도 안 걸리는 초간단 요리로 퓨전 곡물 샐러드라는 게 오히려 가까울 것 같다. 그래도 거기에 노란색 아루굴라 꽃을 얹으면 모양도 예쁘고 맛도 나쁘지 않다. 영주는 “언니가 그 위에 김 가루도 뿌렸어”라고 한다. “네가 손님이라고 내가 정성을 쏟았네” 하고 웃었다.

정말 그렇다. 정성은 손님 대접에 필수다. 비록 내가 음식 하는 데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겁게 하려고 가볍게 상을 차리지만, 정성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보통 나의 점심 상차림은 비교적 간단하다. 주로 애피타이저도 생략한 일품요리가 대부분이지만 예쁜 그릇에 담고 평소 우리가 먹을 때 하고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본다. 바닷가 집은 겨울이 아니면 마당에 꽃이 피어 있어서 식탁에 앙증맞은 꽃이라도 꽂아 놓는다. 일회용 접시나 컵은 스무 명이 넘지 않는 식사 자리에서는 쓰지 않는다. 냅킨도 종이보다는 천으로 만든 것을 쓴다. 그래야 대접하는 것 같다. 

뉴욕의 장 조지(Jean George) 식당에서 꼬마 요리사로 일하던 조카며느리네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예쁜 메뉴판에 그날 메뉴가 쓰여 있었다.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지만, 처음부터 그 메뉴판에 감동됐다. 예쁜 조카 희성이가 솜씨를 잔뜩 부려 차린 저녁 식사에 갔더니 거기에도 손으로 예쁘게 쓴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특별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정성이란 그런 것이다. 남을 대접하는 게 복잡하고 힘들 필요는 없다. 아주 작은 정성으로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손님들이 떠날 때 여분으로 만든 스콘이나 집에서 만든 잼, 그라놀라 같은 것을 넣은 작은 선물 주머니를 주는 것도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 집 비상 음식

아이들을 기를 때 제일 많이 해 먹던 음식이 파스타다. 한식은 반찬 없이 일품요리를 하면 상이 초라해 보인다. 한식을 별로 찾지 않는 남편과 살아서 우리 집에는 김치가 떨어질 때도 많다.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때 고작 카레라이스나 오므라이스, 갈비와 밥 같은 게 한식인 줄 알고 자랐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나를 깡패라고 부르셨다. 네 아이에게 무조건 한 가지만 해서 먹이는 내가 너무 제멋대로라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래도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아예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해주는 건 다 잘 먹었다. 남편 역시 자기가 자란 방식대로 주는 음식을 남기면 절대 안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남기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다 먹었다. 

그중에 제일 하기도 쉽고 아이들도 잘 먹는 요리가 파스타다. 내가 만드는 파스타는 라면보다 조금 번거로운 정도다. 그런데, 그러려면 일단 파스타 소스를 미리 만들어놔야 한다.

파스타의 기본이 되는 고기 소스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간 고기를 볶은 뒤 체에 밭쳐서 기름을 뺀다. 커다란 냄비에 기름 뺀 고기와 얇게 썬 마늘, 다진 양파, 월계수 잎, 말린 고추 그리고 깡통에 든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중간 불에서 한 시간쯤 푹 끓인다. 마지막에 소금으로 너무 짜지 않게 간을 하면 완성이다. 이 미트 소스는 넉넉히 만들어 당장 사용할 양만 남기고 냉동해두면 언제든 기본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미트 소스는 파스타 말고도 다양하게 쓰인다. 고기 라쟈냐 할 때 쓰기도 하고, 타코에 맞게 간을 해서 타코 소로 쓰기도 한다. 매운 고추 다진 것이나 고춧가루, 강낭콩 종류를 넣고 끓이면 칠리 미트 소스가 된다. 

케사디야(quesadilla) 만드는 재료로도 훌륭하다. 토르티야(tortilla)에 이 미트 소스와 치즈를 얹고 그 위에 토르티야를 한 장 더 덮어서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낸다. 여덟 조각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으면 케사디야 완성이다. 결국 한 가지 미트 소스로 다섯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애들 키울 때는 미트 소스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한 번은 친하게 지내던 정 전도사님이 점심 무렵에 집에 들르셨다. 그날 점심 메뉴가 크림소스 파스타와 샐러드였는데 한창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당연히 남편이 저녁도 드시고 가시라고 붙잡았는데 옆에 있던 내가 당황했다. 냉장고에 변변한 저녁거리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손님 앉혀 놓고 장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냉동실에 있는 미트 소스를 얼른 해동해서 이번에는 고기 파스타를 했다. 우리와 허물없는 사이인지라 전도사님은 “세상에, 국수로 두 끼를 먹기는 처음이네요” 하시며 웃으신다. 나는 좀 죄송했지만 크게 미안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우리 남편은 내가 낯이 두꺼워서 그렇다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저녁거리가 변변찮다고 전도사님을 그냥 가시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아직 결혼 전이라 혼자 사시는데 집에 가서 드셔도 부실하기는 매한가지가 아닐까 하고 나 자신을 합리화한다. 우리 엄마 말씀대로 나는 정말 내 맘대로다.

큰아들 깜짝 생일파티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딸아이가 큰오빠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겠다며 보스턴에서 내려왔다. 시차도 안 바뀌었는데 오빠 챙기는 마음이 예뻐서 아무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여행 끝이라 몸이 좀 힘들고 꾀가 나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식당에 전화했더니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이런! 집에서 스테이크만 굽고 나머지는 거의 주문하려고 했는데 역시 일 복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차피 한두 가지는 내가 하려고 했으니 마음을 다잡고 몇 가지 더 늘려 상을 차리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이 조카 저 조카, 우리를 삼촌 이모라고 부르는 모든 조카를 불러 모았겠지만 팬데믹 이후론 아무래도 조금 조심스럽다. 그래서 최근에 시애틀에서 브루클린으로 이사 온 셋째 언니네 큰조카 캔디스(Candis)가 평소 잘 못 보던 동부의 사촌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할 겸 직계 조카들만 불렀다. 어른 열 명에 큰아들네 손자 둘이라 코스요리로 메뉴를 짰다. 

메뉴

난을 곁들인 후무스

시저샐러드

스테이크

해산물 파스타

뿌리채소 구이

*난을 곁들인 후무스

난(naan)과 후무스(hummus)는 파는 것을 사용하는데 나는 마늘 맛 후무스를 사서 푹 삶은 파스닙(parsnip 서양방풍나물)을 으깨서 섞었다. 이렇게 하면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덜 짜고 부드럽다. 전날 만들어놓아도 괜찮은데, 다음 날 따듯하게 데워서 전채로 내면 된다, 난도 따듯하게 구워서 함께 낸다. 

*시저 샐러드 

로메인 상추보다 작은 아티잔 로메인(artisan romaine)을 김치 담글 때처럼 반으로 갈라 속고갱이에 잎사귀들이 붙은 채로 접시에 올린다. 여기에 빨강 노랑 피망을 얇게 썰어 곁들인다. 로메인의 연두색과 어울리는 색이면 아무 채소나 사용해도 된다. 맛있는 시저샐러드(caesar salad) 드레싱을 듬뿍 얹고 구워낸 베이컨 부스러기를 뿌린다.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얼마나 좋은 고기를 사느냐가 중요한데 우리는 코스트코의 프라임 스테이크를 사용한다. 본래 우리 집 스테이크는 큰아들 담당이다. 식당 것보다 맛있어서 가족 모임에는 으레 큰아들이 맡아 한다. 이번에는 큰아들을 위한 깜짝파티라 내가 고기에 올리브 기름과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두었다가 에어프라이어에서 굽는 쉬운 방식을 택했다.  

*해산물 파스타 

해산물 파스타(seafood pasta)는 그냥 만드는 것보다 맛있는 크림 상태의 수프(cream base soup)를 사서 변형하면 좋다. 우리는 코스트코에서 파는 바닷가재 수프(lobster bisque soup)를 많이 쓴다. 올리브 기름에 새우, 오징어, 조개 같은 좋아하는 해산물을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며 볶는다. 수프를 넣고 소금간을 더해서 소스를 완성한다. 파스타 면은 먹기 직전에 삶아 소스에 넣고 잘 섞은 후 미리 다져놓은 파슬리와 파르메산치즈를 뿌려 마무리한다. 

*뿌리채소 구이

뿌리채소 구이는 내가 좋아하는 곁들임 요리다. 감자 당근 사탕무 파스닙 뿌리 등을 익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서 보기 좋게 자른다. 그릇에 담고 크게 썬 마늘, 올리브 기름, 다진 로즈마리, 소금과 후추로 버무려 잘 섞는다. 섭씨 190도로 예열한 오븐에 굽는다. 감자 이외의 다른 채소는 좀 덜 익어도 괜찮다. 

막냇동생 약혼식 (케이크 그림, 크기 소)

아주 오래전, 막냇동생이 남자친구와 결혼 날짜를 잡았을 때였다. 마침 서울서 부모님이 오셔서 워싱턴 DC에 사시던 제부의 어머니와 작은아버님 부부 그리고 친지 몇 분을 모시고 조촐하나마 집에서 약혼식을 하기로 했다. 그 당시는 내가 음식을 잘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주로 언니들이 도와줘서 상을 차렸던 것 같다. 음식을 얼마나 잘 차렸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만든 약혼 케이크는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요즘은 케이크도 거의 제과점만큼 구울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디어는 좋았다. 일단 베티 크로커(Betty Croker) 상표의 스펀지케이크 가루를 사서 커다란 케이크 두 판을 구웠다. 그리고 세 가지 크기의 동그라미로 잘라 3층으로 만들었다. 그런 후에 하얀색 바닐라 크림(vanilla icing)을 사서 입혔더니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춘 3층 케이크가 되었다. 그 위를 어떻게 장식할까 고민하다가 동생 머리에 꽂아 주려고 사 온 분홍색 장미꽃을 목만 잘라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돌아가며 달팽이같이 장식했다.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근사했다. 꽃을 먹을 수는 없었지만, 사진에는 정말 예쁘게 찍혔다. 

약혼식에 동생은 내 한복을 빌려 입었다. 머리는 언니들이 예쁘게 올려주었다. 워낙 예쁜 동생은 그날 장미보다 더 아름다웠다.

미국 배로 만드는 잼 (그림, 크기 소)

우리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미스터 망고(Mr. Mango)라는 가게가 있다. 이곳은 24시간 연다는 편리성 말고도 과일과 채소를 아주 싸게 파는 장점이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데 인근에 열 개가 넘는 체인점을 갖고 있다. 이름도 미스터 키위, 미스터 코코 같은 과일 이름이다. 한국의 ‘총각네 야채가게’와 비슷한 것 같은데, 구매량이 많아서 싼값에 물건을 받아 오는 것 같다. 가끔 유통기한이 임박한 물건은 더 싸게 팔아서 그때 사면 공짜다 싶을 정도다. 

어느 여름에 황도 몇 개를 사 왔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바로 다시 사러 갔다. 그런데 그새 성한 건 동이 나고 멍든 것들을 담아놓은 상자만 있었다. 마침 매니저 미스터 윤이 있기에 그것도 살 수 있나 물어봤더니 오히려 미안해하며 “그냥 가져가세요” 한다. 냉큼 가져다가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썰어서 한소끔 끓였더니 훌륭한 복숭아 잼이 되었다. 사실 나는 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주 브런치를 하다 보니 손님용 잼이 필요하고, 한 가지 정도 흔하지 않은 재료로 만든 잼이 있으면 식탁이 더 향긋하고 풍성해진다.  

우리 집의 수제 잼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건 배 잼이다. 예전에 포르투갈 신트라에 갔을 때 카페에서 스콘에 발라 먹은 적이 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집에 와서 바로 해보았다. 굉장히 만들기 쉬운 데다 향이 기가 막혀서 자주 해 먹는다. 아쉬운 것은 재료가 미국 배(Bartlett pear)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배로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향이 미국 배만 못하다. 아삭한 맛이 없고 삶은 것 같아서 평소엔 안 좋아하던 미국 배가 잼을 만드는 데는 제격이다. 잼을 만들려면 껍질이 연두색에서 예쁜 연노랑으로 바뀌고 누르면 쏙 들어갈 정도로 익은 것이 좋다. 잘 익은 것은 향기가 감돌아 눌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긴 하다. 덜 익어 딱딱한 배는 상온에서 며칠 익히면 물렁해진다. 

만들기

1. 배는 껍질을 벗겨 반으로 잘라 속을 도려내고 얇게 저민다. 저미지 않고 깍둑썰기를 하면 빵에 얹을 때 흘러내려 좋지 않다.

2. 냄비에 넣고 배에서 즙이 나올 때까지 중간 불에서 한소끔 끓인다.

3. 건더기만 건져 소독해 놓은 병에 담고, 남은 배즙은 걸쭉해질 때까지 더 끓인다. 

4. 걸쭉하게 졸인 즙을 병에 담아놓은 배 위에 섞으면 향기로운 배 잼 완성이다. 

바삭하게 구운 빵에 버터를 바르고 배 잼을 얹으면 프랑스 빵집에서 파는 배 타르트와 비슷하다. 설탕을 넣지 않은 100% 과일 잼이라 듬뿍 얹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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